ADHD는 전통적으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충동성의 문제로 분류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국내외 정신의학계에서는 ADHD를 단순한 주의력 문제뿐만 아니라 ‘감정 조절 장애(emotional dysregulation)’의 핵심 진단군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감정조절 문제와 ADHD의 연결고리, 이 논쟁의 근거와 반론, 그리고 향후 진단 체계 변화 가능성까지 심층 분석합니다.
감정 조절 문제는 ADHD의 핵심 증상인가?
그동안 ADHD는 주로 집중력 부족과 충동성으로 정의되었고, 감정 조절은 부수적인 ‘결과’로만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임상 현장에서는 ADHD 환자들이 쉽게 분노하거나, 감정 기복이 심하며, 작은 자극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등의 문제를 함께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감정조절 문제는 특히 성인 ADHD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의 짜증, 대인관계 갈등, 자책과 후회의 반복 등이 실행기능 장애보다 더 심각한 삶의 불편함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ADHD 진단을 받은 성인 중 상당수가 “마음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친다”고 표현할 정도로 정서적 불안정성을 호소합니다.
이에 따라 최신 연구에서는 감정 조절 능력 저하가 ADHD의 ‘제4의 핵심 증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 정신의학회 및 유럽 정신신경학회에서도 2020년 이후 발표된 보고서를 통해 “감정조절 문제를 ADHD 진단 기준에 명시해야 한다”는 제안을 담고 있습니다.
감정조절장애로의 분류 확장이 왜 필요한가?
ADHD의 감정적 측면을 공식 진단기준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은 단지 이론적 차원이 아니라 임상적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습니다.
첫째, 현재 ADHD 진단 기준(DSM-5, ICD-11)만으로는 감정 문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오진 또는 과소진단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 성인, 자폐스펙트럼과의 중복 진단군에서는 충동성보다 감정폭발이나 감정제어 실패가 더 두드러지지만, 이를 진단 기준에서 다루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ADHD 진단을 놓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둘째, 치료 방향 설정에도 영향을 줍니다. 기존 ADHD 약물(예: 메틸페니데이트, 아토목세틴 등)은 주로 집중력과 충동 조절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감정 기복이나 분노 폭발에는 제한적 효과만을 보입니다. 반면 감정조절을 주요 타깃으로 하는 인지행동치료(CBT), 정서코칭, 수용전념치료(ACT) 등의 병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셋째, ADHD와 경계성 인격장애, 양극성 장애와의 구분 문제도 감정조절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할 이유 중 하나입니다. 증상이 유사한 일부 정서장애와 ADHD의 진단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감정조절 기준의 명문화는 향후 진단 체계의 정교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증상 나열을 넘어, 정서적 자기조절 능력의 저하를 ADHD 핵심 메커니즘으로 보는 최신 뇌과학 연구 흐름과도 연결됩니다.
감정조절 포함에 대한 반론과 향후 전망
한편, 감정조절 장애를 ADHD 진단 기준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감정조절 문제는 ADHD의 결과적 특성이지, 고유 증상은 아니며, 다른 정신질환(우울증, 불안장애 등)과 중복되는 특성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진단 기준의 확장은 자칫 과잉진단 및 범위 확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진단이 확대되면 치료와 복지자원의 분배 문제, 보험 기준 혼선, 오남용 가능성 등이 동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ADHD 진단에서 감정 조절 요소를 평가하려는 비공식 임상 척도(예: ERICA, DERS 등)가 활발히 사용되고 있으며, 연구기관 및 진료 현장에서는 이미 감정 프로파일을 고려한 맞춤형 치료 계획 수립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향후 DSM-6 또는 ICD의 개정에서는 감정조절 요소가 주진단 기준은 아니더라도 부진단 요소 또는 아형(subtype)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ADHD에 대한 더 입체적인 이해와 치료 전략 수립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입니다.
ADHD는 단순한 주의력 결핍을 넘어 감정의 조절력 저하까지 포함하는 복합 신경발달장애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감정조절 기능은 삶의 질과 직결되며, 진단과 치료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됩니다. 향후 ADHD 진단 체계는 보다 정밀하고, 감정-주의-충동을 함께 고려하는 다차원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감정조절이란 렌즈를 통해 ADHD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도는, 진단과 치료 모두에 큰 전환점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